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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괴담

제주도 숨비소리 수살귀 2편 (完)

뒤늦게 뛰어들어간 삼촌이 한참 동안 그를 찾아다녔지만, 고씨는 마치 증발이라도 한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보트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고 날은 어느새 어둑어둑 저물어가고 있었다. 삼촌은 곧장 어촌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고, 근처에 있던 어선 한 척이 연락을 받고 와서 고씨의 보트를 끌고 갔다. 사라진 고씨를 찾기 위해 온 마을사람들과 경찰 구조대 등 수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었지만, 태풍이 북상하며 파도가 거세지는 바람에 수색이 중단되고 말았다. 고씨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삼촌은 발만 동동 굴렀다. 밤 열 시 무렵에는 잠시 비가 걷히면서 바람이 제법 잠잠해졌는데, 수색작업은 여전히 중단된 상태였다. 썰물 때까지 고씨를 찾지 못한 채 이대로 태풍이 지나가버린다면, 그의 시신조차 영영 수습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삼촌과 작은 어머니가 처음 제주도에 정착했을 때, 도민들의 텃세에 쩔쩔매던 삼촌에게 선뜻 손을 내민 사람이 고씨였다. 그는 삼촌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도와줬고, 삼촌 역시 그런 고씨를 친동생처럼 여겼다. 통곡을 하다못해 실신해 버린 고씨의 아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고씨의 어린 자녀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삼촌은 결국 직접 나서기로 했다. 당시 삼촌이 사용하던 머굴이라는 재래식 산업용 잠수장비는 조력자 없이 혼자선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삼촌은 스노클과 랜턴, 오리발 등 최소한의 장비만 착용한 채 가족들 몰래 밤바다에 뛰어들었다.  

'여기는 해안선이 복잡하니, 조류에 휩쓸렸다 해도 아직 이 근방에 있을 거야'

 

'태풍이 여기까지 오려면 반나절 넘게 남았으니, 빨리 찾아서 복귀하자' 

삼촌은 테왁라는 기구에 연결된 로프를 붙잡고 수면을 오르내리며 해안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테왁이란 부력이 있는 커다란 스티로폼 덩어리로 구명조끼를 입지 않는 해녀나 다이버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시야가 흐린 데다 비가 다시 쏟아지며 바람이 다시 거세져버렸고 지금 당장 철수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삼촌은 수색을 멈추지 않았다.  

'딱 한 군데만 더 둘러보고 가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수심 8미터 지점에 랜턴 불빛이 비추는 곳에 희미한 사람 형체가 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삼촌은 급히 수면 위쪽으로 올라가 숨을 한번 가다듬은 후 다시 물아래로 내려가 랜턴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아까 보았던 사람 형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삼촌은 그것이 고씨의 시신이라 확신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강한 조류 탓에 시야가 점점 탁해지며 몸이 밀려나 접근조차 쉽지가 않았다. 삼촌은 전력을 다해 다가갔고, 5미터, 3미터, 그리고 드디어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갔다.

 

"저게 뭐야!" 

몸을 곧게 세운 채로 바닥을 바라보며 물속 한가운데 둥둥 떠있던 그것은 키가 보통 성인 남성의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의 긴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뻗쳐서 기분 나쁘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힘껏 헤엄쳐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이 거센 조류 속에서 저 앞에 있는 사람 형체는 꼿꼿하게 서서 지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미동조차하지 않았다. 삼촌은 뭔가에 홀린 듯 잠시 넋을 잃고 그 형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찢어질 듯 높은 톤의 음성이 물속에서 나지막이 들려왔다. 그건 분명히 사람이 인위적으로 내는 소리였다. 해녀들의 숨소리를 입으로 흉내내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는 듣기 거북할 정도로 몹시 불쾌했다.

 

 

소리를 찾아 사방을 둘러본 후, 다시 고개를 돌린 순간 삼촌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미동도 없던 사람의 형체가 몸을 서서히 움직이며 삼촌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빛바랜 색동저고리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사방으로 뻗친 기다란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가 않았다. 고개를 좌우로 까딱까딱거리며 기이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물살에 의해 자연스레 움직이는 것으로 보기엔 자세가 상당히 비정상적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등골이 오싹해진 삼촌은 서둘러 수면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그때 귀 바로 옆에서 또다시 그 소리가 들렸고, 깜짝 놀란 삼촌이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괴형체가 있었던 아래쪽 역시 아무것도 없었는데, 무심코 고개를 든 순간 그것이 삼촌의 코앞에 서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물살에 휘날리며 삼촌의 얼굴을 마구 때렸고, 전방의 시야를 다 가릴 정도로 커다란 얼굴이 갑자기 나타나자, 삼촌은 자신도 모르게 냅다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몸속에 남아있던 공기가 모두 빠져나가버렸고, 삼촌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켜고 말았다. 다량의 바닷물이 순식간에 삼촌의 폐와 식도로 들이쳤고, 가슴에 엄청난 통증을 느낀 삼촌은 급히 수면을 향해 헤엄쳐 올라갔다. 그런데, 그 순간 한쪽 다리가 갑자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빛을 비춰 확인하려 했지만, 랜턴은 두 번 깜빡거리더니 휙 나가버렸다. 삼촌이 새카만 물 아래로 손을 뻗어 다리 쪽을 더듬거렸고 손끝에 날카로운 손톱과 크고 기다란 손가락들이 만져졌다. 누군가의 손이 삼촌의 왼쪽 오리발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삼촌은 마구 발버둥을 치며 오리발을 벗어던진 후 사력을 다해 위쪽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밖의 상황은 더더욱이 암담했다. 로프는 이미 놓친 지 오래고 테왁을 찾기는커녕 어느 쪽이 육지인지 구분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달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비바람과 함께 강한 파도가 끊임없이 삼촌을 덮쳐와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구명장비 하나도 없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있는 건 자살행위와 다름이 없었다. 


삼촌은 또다시 발목이 붙잡혀 물속으로 끌려들어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앞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패닉 상태에 빠진 삼촌은 참을 수 없는 공포를 견디지 못해 그저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거친 숨을 쉴 대마다 머리 위로 끊임없이 덮쳐오는 파도 때문에 공기를 마시는 건지 바닷물을 마시는 건지 분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힘이 다 빠진 삼촌의 정신이 흐려지던 찰나 무언가 단단한 게 머리에 쿵하고 세게 부딪혔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삼촌은 손에 닿은 물체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머리에 부딪힌 그것은 커다란 암초였다. 온몸이 암초에 찍히고 긁혀 피가 흘러내렸지만 고통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물밖으로 올라온 삼촌은 잠시 숨을 고르며 저 멀리 보이는 마을 가로등의 희미한 불질을 바라보았다. 머리와 몸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렸고, 그제야 정신이 들며 고통이 밀려왔다. 상처가 꽤 심각해서 서둘러 지혈을 해야 했지만, 머리에 흐르는 피에 빗물이 섞인 채 얼굴을 뒤덮어 버려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삼촌은 랜턴을 집어 들었다. 

"제발... 제발 좀 켜져라" 

그렇게 랜턴 뒷부분을 몇 번 치자 탁하고 불이 들어왔고, 불빛을 비추어 주변을 둘러본 삼촌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주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철근들이 모두 붉은색이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신방이 그 누구도 얼씬조차 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던 그곳에 삼촌이 위태롭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조금 전 물속에서 겪었던 악몽 같은 일을 떠올리며 좌절해 버린 삼촌은 고민 끝에 갯바위를 벗어나 육지로 가기로 했다. 육지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만조 때 수심이 제법 깊은 데다 비바람이 거세져 파도가 꽤 높아진 상태였다. 이미 탈진한 상태로 만신창이가 된 몸이 이 성난 파도를 뚫고 무사히 육지에 닿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물속에서 봤던 그것이 또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삼촌은 자리에서 일어나 랜턴으로 주변을 비춰보았다. 그런데... 

"저게 뭐야!" 

대략 5미터 남짓 떨어진 수면 위쪽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솟아있던 것이다. 족히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남녀가 빼곡히 모여서 삼촌을 등지고 물 위쪽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기이한 관경에 삼촌은 두 눈을 비비며 그것들을 다시 한번 똑바로 쳐다봤다. 그것들은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꿈쩍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중 바짝 깎은 머리에 커다란 귓불을 가진 남자의 뒤통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임마야, 니 거기서 뭐하노? 행님왔다. 당장 나오너라! 인마, 퍼뜩 집에 가자!" 


그건 바로 삼촌이 애타게 찾고 있던 고씨였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어디선가 기이한 소리가 파도를 뚫고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아까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소름 끼치는 그 소리에 삼촌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랜턴을 비췄다. 그리고, 그곳은 누군가 갯바위 뒤쪽에서 고개만 내밀고 삼촌을 노려보고 있었다. 상반신 만으로도 일반 성인의 키를 훌쩍 넘기는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채 퉁퉁 불어있었다. 이마 곳곳에는 붉은 점들이 찍혀있었고, 비정상적으로 넓은 미간에 가로로 길게 찢어진 눈은 움푹 파여 광대뼈 바로 위쪽에 붙어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진 덥수룩하고 퍼석한 머리칼은 흡사 들짐승의 갈기처럼 보여서 더욱더 공포스러웠다. 그것은 살기가 가득한 시뻘건 두 눈을 부릅뜨고 삼촌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 곳에는 온통 피로 얼룩 긴 오방색 저고리가 보였다. 그건 삼촌이 아까 물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삼촌의 손끝에 느껴졌던 기다란 손가락 끝에는 새까만 손톱들이 제멋대로 솟아나있었다. 공포에 질려 그대로 얼어붙은 삼촌은 그저 그것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것이 바로 삼촌을 덮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것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삼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요란한 파도소리와 빗소리가 잠깐 멈춘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심장은 터질 듯 요동을 쳐댔고, 피를 가득 머금은 슈트에서는 아련한 온기와 함께 비릿한 피비린내가 스멀스멀 오라 오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이제 죽기 살기다'

삼촌은 마음속으로 셋을 센 뒤에 곧장 물로 뛰어들어 전력을 다해 육지까지 헤엄쳐가기로 했다. 여기서 100미터 정도만 헤엄치면 발이 땅에 닿는 수심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조류를 잘못 만나면 순식간에 먼바다로 밀려나 그대로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 모든 건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 둘....' 

방금 전까지 삼촌의 눈앞에 있던 그것이 순간 자취를 감춰버렸다. 삼촌이 육지까지의 거리를 재느라 순간적으로 시선을 떼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불쾌한 숨소리와 함께 얼음같이 차가운 냉기가 삼촌의 볼을 스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악취가 풍겨져 왔다. 온몸에 털이 쭈뼛선채 그대로 굳어버린 삼촌은 눈만 겨우 움직여 곁눈질로 살짝 쳐다보았다. 차마 랜턴으로 비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삼촌은 물속으로 몸을 날렸다. 짠 바닷물이 상처에 닿아 칼에 찔리는 거 같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아픔을 느낄 여유 따윈 없었다. 삼촌은 죽을 힘을 다해 육지로 헤엄쳐갔다. 몸이 조금 앞으로 나아간다 싶다가도 금세 힘이 빠지며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눈에는 핏물이 들어차서 이내 시야가 흐려졌다. 삼촌은 오랜 경험과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처음 출발했던 방향을 애써 기억해 내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팔다리의 감각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엉뚱한 곳으로 밀려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불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던 바로 그때 삼촌의 손가락에 무언가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억세고 기분 나쁜 촉감은 그것의 머리카락 같았다. 놈이 여기까지 날 쫓아왔구나,하고 생각한 삼촌은 결국 모든 걸 체념해 버렸고, 아무 감각이 없는 몸으로 바닷물만 꾸역꾸역 삼키며 의식을 잃어갔다. 아득한 시간이 지나고 삼촌은 자신의 몸이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대로 놈에게 잡혀가는 건가 싶어 마구 저항을 하자 누군가 주먹으로 삼촌의 얼굴을 내리쳤고, 삼촌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헉... 헉..... 여기가 어딥니까?" 

곧이어 삼촌은 자신의 두발이 땅에 닿아있다는 걸 알았다. 몇 번이고 눈을 비벼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주민 세 명이서 삼촌을 부축하며 해변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야이, 미친놈의 자슥아. 니 뒤질라고 환장했나!! 퍼뜩 다리에 힘줘라. 여서 정신 단디 안 차리면 다 죽는다고" 

귀에 익은 걸쭉한 부산 사투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작업반장 윤 씨 아저씨였다. 늦은 시간까지 해변을 수색하던 몇몇 주민들이 저 멀리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삼촌을 기적처럼 발견했고, 모두 그가 사라진 고씨인 줄 알고 바다에 뛰어든 것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삼촌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급히 수혈과 봉합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삼촌의 열손가락은 거의 대부분 골절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작은 어머니께서 당장 이혼하자며 펄펄 뛰셨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삼촌은 퇴원한 그날부터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꿈을 꾸면 쾌청한 하늘 아래 잔잔하고 푸른 바다가 펼쳐져있고, 바다의 한가운데에는 고씨가 둥둥 떠있다. 삼촌이 그에게 점점 다가갈수록 고씨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그와 동시에 주변엔 짙은 어둠이 깔린다. 고씨는 몹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삼촌을 응시하다가 입을 뗀다. 

 

"아.... 아...."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그것은 살기 가득한 시뻘건 눈을 뜨고 커다란 입을 쫙 벌리며 삼촌의 코앞까지 다가와 활짝 웃는다. 그리고, 그 입속에는 푸석한 머리카락들과 검붉은 피가 가득하다. 삼촌은 물속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어두운 심해로 끝없이 끌려들어가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 일로 삼촌은 한평생을 같이 했던 바다를 등지고 잠수사 일을 그만두었다. 파도소리만 들려와도 그날의 그 기억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바닷가 근처만 가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리던 삼촌은 아주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자신이 고씨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함께 그것의 끔찍한 잔상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삼촌은 가족들과 함께 제주를 떠나 고향인 대구로 이주했고, 작은 어머니와 함께 종교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그 트라우마에서 해방될 수가 있었다. 환갑이 훌쩍 넘으신 삼촌은 두 아들이 결혼하여 독립하자 작은 어머니와 함께 제주의 그 마을로 돌아갔다.

 

어릴 때 삼촌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했던 나는 무척이나 잔잔하고 아름다웠던 그 마을의 해안 절경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몇 년 전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삼촌을 뵙기 위해 그 마을을 찾아갔는데, 그곳은 관광개발로 인해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갯바위 쪽은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마을 선착장이 부두로 확장이 되면서 방파제에 완전히 가로막혀 버렸다. 마을은 여전히 평화로웠고, 그 일 역시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버렸지만, 가끔은 궁금할 때가 있다. 30여 년 전 삼촌이 마주했던 그 존재는 아직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또 다른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을까.

 

 

1차 출처: 공포라디오 0.4MHz 쌈무이

2차 출처: 다음카페 쭉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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