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에 대구에서 태어난 우리 삼촌은 어릴 때부터 물놀이를 유난히 좋아하셨다고 한다. 중고등학생 때 청소년 수영선수로 활약하며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수영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남다른 분이었다. 하지만, 삼촌이 성인이 되기 전에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며 가정형편이 어려워졌고, 삼촌은 수영선수로서의 꿈을 끝내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삼촌은 22살이 되던 해에 경남 진해에 있는 해군 해남 구조대 통칭 SSU에 자원입대하셨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땅을 치며 후회하셨다고 하는데, 훈련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고된 훈련을 하루하루 간신이 버텨내신 삼촌은 군복무 중에 수중 용접기술을 배우셨고, 전역 후에 부산의 꽤 규모 있는 조선소에 취직해 5년 동안 산업 잠수사로 활동했다. 그러다 서른 살에 제주도가 고향이신 직장동료분과 사랑에 빠지셨고, 그 분과 결혼 후에 제주 서귀포의 작은 어촌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때가 팔십 년대 초반이었는데, 당시 전문인력이 귀했던 제주도에서는 젊은 나이에 1급 잠수기능사인 삼촌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삼촌은 인양작업이나 수중공사 등 다양한 일을 하셨고 그렇게 가정을 이룬 삼촌은 열심히 일하시며 나름 넉넉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 평안한 마을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마을 해변과 선착장 사이에는 커다란 갯바위 하나를 중심으로 암초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다양한 바다생물의 군락지로 낚시꾼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낚시 포인트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밤낚시를 하던 낚시꾼 두 명이 실종된 것이다. 주민들은 그저 낚시꾼들의 부주의로 그들이 너울에 휩쓸린 거라며 유감을 표할 뿐 크게 동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며칠 후에 같은 장소에서 또다시 낚시꾼이 익사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사고와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지면서 삼촌은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었다.
한 젊은 낚시꾼이 동료들과 함께 갯바위 위에 자리 잡고 앉아 회를 안주삼아 과하게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 물가와 가까운 암초 위에 서서 소변을 봤는데, 그러다 갑자기 바다에 첨벙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동료들은 처음에 그가 술에 취해 고꾸라진 줄 알고 깔깔 웃었는데, 물에 빠진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먼 바다로 헤엄쳐갔다고 한다. 일행들이 그를 애타게 불렀지만 그는 뭔가에 홀린 듯이 계속 멀어져 갔고, 몇몇 사람들이 물에 뛰어들어 그를 쫓아갔는데, 다들 물에서 뭘 본 건지 반쯤 넋이 나간채로 기겁을 하며 물밖으로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바닷속으로 사라진 그는 다음날 싸늘한 시신이 되어 뭍으로 밀려왔는데, 시신의 입안에는 정체 모를 머리카락이 한 뭉텅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갯바위 낚시가 위험하긴 해도 그것은 전례 없이 끔찍한 사고였다. 연이은 사고로 인해 평화롭던 마을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 몇 달 사이에 바다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까지 실종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해녀들은 수심 15미터 이상에서도 작업을 거뜬히 하는 베테랑이었다. 그리고 보통은 서너 명의 해녀들이 짝을 이루어 작업을 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분명 동료들이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마을 해녀들이 바다에 나가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해녀들의 사고 소식에 마을 주민들 모두 몹시 황당해했다. 당시 주변 해녀들의 말에 따르면, 실종된 해녀들 모두 평소와 같이 물질을 하다가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탓에 그 누구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숙련된 잠수부까지 실종이 되자 마을은 한바탕 난리가 났고, 작은 어머니는 삼촌이 수색작업을 하시는 걸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한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반년 사이에 한 마을에서 일어났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근의 낚시꾼 한 명이 또다시 실종되자 이 모든 것이 물귀신의 탓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마을 전체에 돌기 시작했다. 결국 한평생 물질을 업으로 삼았던 해녀들조차 바다에 들어가길 꺼려했고 낚시꾼들 역시 더 이상 마을을 찾지 않게 되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어업 수확량까지 눈에 띄게 줄어들자 급기야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들마저 떠나가기 시작했다. 어업의 잠정 중단과 줄초상으로 평화로운 마을은 한순간에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상황을 보다 못한 마을 어르신들은 영험하다는 신방을 불러오셨다. 신방은 제주도 방언으로 무속인을 칭하는 말이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긴 잿빛 머리를 뒤로 정갈히 묶은 중년 여성의 신방이 마을로 들어왔고, 그는 해변가에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그리고 "어유, 이렇게 멀리 있어도 숨통이 조여오는구먼. 이건 예삿 기운이 아니야" 연신 방울을 흔들며 뭔가를 찾는 듯 물가를 천천히 둘러보던 신방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도망치듯 뭍으로 나왔다.
마을 촌장에게 그간의 일을 전해 들은 신방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간 못되고 끔찍한 것들은 많이 봐왔지만 저렇게 흉측한 건 난생처음 봅니다. 독이 어찌나 바짝 올랐는지 내가 모시는 할머니도 등뒤로 숨어버렸어요. 악귀도 저런 악귀가 없습니다. 태생은 본디 인간이었겠지만, 이제 인간의 모습은 완전히 잃고 말았어요. 그 악독한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이니, 어설프게 나섰다간 도리어 화를 입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굿으로 어찌할 수는 없겠습니까"
"물귀신은 보통 넋건지기 굿을 해서 한을 풀고 넋을 물에서 건져서 천도시키는 것으로 달래긴 합니다만, 이 정도로 본질이 변형된 귀신은 생전에 가지고 있던 정신이나 기억 따위는 모두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부류는 증오나 원한조차도 없어려 그저 맹목적으로 산 사람의 목숨을 끝없이 거둬가죠. 사연을 알 방법도 없고 대화조차 되지 않을 테니, 성불은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음기가 바다의 기운보다 강해서 다른 곳으로 내치기도 힘듭니다"
"아이고, 대체 그런 게 왜 우리 마을에 나타난 겁니까?"
"글쎄요 분명히 하루아침에 나타난 건 아닐 테고, 오랫동안 휴면상태에 있다가 최근에 어떤 이유로 인해서 깨어난 게 틀림없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쉽진 않겠지만,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액막이를 쳐서 저걸 봉인시켜야 합니다"
그날밤 마을에는 칠흑보다 깊은 어둠과 끝없는 적막만 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문제의 갯바위 위에서 액막이 굿과 봉인의식이 치러졌다. 의식은 매 썰물 때마다 행해졌고, 마을 해안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는 무려 닷새동안이나 이어졌다. 봉인 의식이 모두 끝난 후에는 의식에 사용된 물건에 명주실을 감아 쇠붙이를 달아 물속에 수장시켜 버렸다.
"신방.. 앞으로는 이 마을에 끔찍한 일은 더 이상 없겠지요?"
"그건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누가 부정 타는 일을 해서 저걸 깨우는 날에는 장담하건대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저 갯바위 근처에는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세요"
그 후로 마을사람들은 기다란 철근에 빨간 페인트를 칠해서 갯바위 쪽에 군데군데 심어 두고 그곳에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더 이상 나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해녀들은 다시 일을 시작했고, 마을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그 후 4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루는 삼촌이 장인어른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저번주였나? 새벽에 배 타러 나가는데, 저 멀리 해변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그게 무슨 여자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비명소리 같기도 한 것이... 아무튼 기분이 영 나쁘더구나. 그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엊그제 새벽에 같은 장소에서 또 그 소리가 들리더라고. 이번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오한이 들면서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매스꺼운 게..... 어휴, 그 길로 집에 와버렸지. 어째 느낌이 영 불길하단 말이야. 자네도 바다 나갈 땐 각별히 조심하게"
하지만, 삼촌은 예전에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탓에 장인어른께서 예민하게 반응한 거라 여겼다. 며칠 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시월의 어느 오후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삼촌은 양식장 보수작업을 마친 후 보트를 타고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해안에 가까이 다달았을 무렵 쿵 소리와 함께 보트의 모터가 멈춰버렸다. 팬에 그물 같은 게 잔뜩 엉켜서 삼촌의 친한 동생 고씨가 급히 입수하여 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삼촌은 보트 위에서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상황을 지켜봤는데, 한참을 지켜봐도 고씨가 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걱정스레 주변을 살펴보는 삼촌의 시야에 갯바위가 들어왔고 그날따라 군데군데 솟아있던 붉은 철근들이 평소보다 훨씬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삼촌이 입수를 하려던 그때 고씨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 놀래라.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
"형님 이거 그물이 아니고 머리카락 같은데요?"
"말이 되는 소릴해라. 그물이 아니면 해초 같은 거겠지"
"이상하네. 암만 봐도 해초 아닌 거 같은데요. 암튼 싹 다 잘라낼 테니까 저기 니퍼 좀 주세요"
"어, 그래. 니 혼자서 괜찮겠나?"
"아이고, 형님 매번 있는 일 아닙니까? 금방 처리할게요"
그렇게 도구를 챙겨 물속으로 들어간 고씨는 영영 물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1차 출처: 공포라디오 0.4MHz 쌈무이
2차 출처: 다음카페 쭉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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