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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기묘

경차

몇 년 전 어느 날, 나는 친구 A를 태우고 자동차를 몰고 있었다.

 

조금 멀리 있는 B라는 친구의 집으로 놀러 가는 길이었다. 미니 동창회 같은 느낌으로 대학 시절 친했던 친구들 10명 정도가 모여서 먹고 마실 계획이었다. 나는 가까이 사는 A를 태워서 같이 B네 집으로 향하기로 했었는데, A가 시간을 착각하는 바람에 출발이 지연되었다. 미안해하는 그를 태우고 속도를 올렸지만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B의 집은 산 너머에 있었다. 산길에 접어드니 도로에는 우리 말고 다른 차는 없었다. 커브길이 종종 등장하기는 했지만 신호나 갈림길도 없이 한쪽 차선을 쭉 달리기만 하는 쉬운 길이었기 때문에 나는 상당히 속도를 내서 차를 몰았다.

 

A와 시덥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며 가고 있다 보니, 전방에 부자연스럽도록 천천히 달리는 경차의 미등이 보였다. 일 차선 도로였기 때문에 산을 넘어 내리막길이 될 때까지는 추월할 공간이 거의 없는 상황. 가뜩이나 약속시간에 늦었던 우리에게 있어서는 방해물이 따로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금방 경차의 바로 뒤까지 바싹 따라잡았다. 끓어오르는 짜증을 참으며 한동안은 그 뒤를 얌전히 따라갔지만 어째서인지 그 경차는 점점 느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커브를 돌 때마다 거의 멈출 기세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애매한 속도로 앞을 달리는 경자동차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나는 A에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 차 너무 심하지 않냐? 적당한 곳 찾으면 바로 추월해 버릴 거야."

 

"..........."

 

A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힐끔 그를 곁눈질하니 그는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심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너무 속도를 내서 차멀미라도 하는 건가...

 

"A, 괜찮아? 토할 것 같아?" 

 

".............."

 

"야, 괜찮냐니까?"

 

A는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속이 메스껍다기보다는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야, A!!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거의 외치듯 A에게 말을 하자 그는 정신이 든 것처럼 입을 열었다.

 

"Y(나)..... 큰일 났다. 일단 빨리 달려."

 

"응? 뭐가 큰일 났다는 거야? 이해를 못 하겠어. 일단 추월할게."

 

가뜩이나 앞 차가 느려서 짜증이 나던 차에 A까지 이상한 행동을 해서 한층 더 기분이 나빴던 나는 적당한 직선 도로에서 그 차를 추월했다. 속도를 원래대로 올리자 백미러로 보이는 경차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그 차를 추월하고 나니 기분이 조금은 침착해졌다. A를 보자 그도 안색이 조금은 나아져 있었다. 진정된 것 같기에 아까 왜 그랬는지를 물어보았다.

 

"A, 아까는 왜 그런 거야?"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아까 그 경차 좀 이상하지 않았어?"

 

"이상하다니... 뭐 심하게 느리긴 했지. 어차피 아줌만지 할아버진지 할머닌지가 운전하던 거 아니었을까?"

 

"차 안은 안 보였어....?"

 

"글쎄, 안 봤는데."

 

".....그럼 됐어. 이제 이 이야기 그만하자."

 

"그렇게 말하면 더 궁금하잖아. 뭔데, 왜 그러는데?"

  

A와 이야기를 나누며 백미러로 눈을 돌려보니 아까까지 멀찍이 뒤떨어져 있던 경차가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아니, 따라온다기보다는 거의 도발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속도를 올려봐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경차는 끈질기게 따라오며 헤드라이트에 클락션까지 울려댔다. 등골이 오싹했다.

 

"안 되겠다. 저 차 먼저 보내야겠어. 아까까지는 그렇게 느려터졌던 주제에 왜..."

 

그러자 A가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

 

"안 돼!!! 절대 안 돼!!! 먼저 보내면 안 돼!!!"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빨리 달리면 사고 난단 말이야. 저 차 보낸다."

 

 

A는 나의 말에 이상하게도 눈물이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이윽고 알겠다고 한마디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길을 양보하려고 속도를 줄이며 길가 쪽으로 빠지자 뒤쪽에서 [쿵] 하는 충격이 전해졌다. 빨리 달리라고 뒤에서 밀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상대편 차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길을 양보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나는 다시금 속도를 높였다.

 

두렵고 무서웠다. 속도를 줄일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길을 양보할 수도 없다. 어쨌든 도망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 장소까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휴게소가 있던 것이 떠올랐다. 

 

심한 부담감 속에서 한동안 달리다 보니 길 우측에 휴게소 주차장 입구가 보였다. 24시간 영업이어서 입구에 체인은 걸려있지 않았다. 꽤 넓은 장소였기 때문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데도 부딪치지 않고 주차장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주차장에 들어가서 멈출 때까지 자동차는 한동안 빙글빙글 돌았다. 무리한 각도로 핸들을 돌렸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주차장 내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사고 없이 차가 멈췄다. 멈춘 차 안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미쳤다.

 

그 경차는 갔나?

 

주차장 입구를 보자, 경차는 주차장 입구를 가로막듯 세워져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어쩌지. 저 차 우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나 봐."

 

A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아까부터 고개를 숙인 채로 이쪽을 보지 않았다. 원래부터가 심약한 친구이긴 했다. 나라도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저차가 내 범퍼를 박았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긁힌 상처라도 났으면 변상을 받아야 한다. 아까 우리를 도발하던 것도 그렇고 이렇게나 두려워하는 A의 모습을 보니 점점 화가 났다. 왜 우리가 이렇게 두려워해야 하는 건데? 공포보다는 분노가 치밀었다.

 

"나 따지고 올게."

 

A에게 내뱉듯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A는 기겁을 하며 말렸지만 어디 얼굴 좀 보자는 생각으로 나는 그 경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경차는 이상했다.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썬팅을 짙게 넣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경차의 운전석 창문에 노크를 했다. 그러자 운전석의 창문이 슥- 하고 열렸다. 열린 창문으로 차 안을 본 나는 일순 내 눈을 믿을 수 없어 다시 한번 찬찬히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냈던 소리 중 가장 크게 비명을 지르며 내 차로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차 안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몇 명이나 타고 있었다.

 

4인 승차에 5명이 타고 있었다 정도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빼곡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지옥철 수준이었다.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이 그 좁은 경차 내에 가득 차도록 사람이 채워져 있었다. 상하좌우 방향이 무의미할 정도로 테트리스 블록 쌓듯 차곡히 사람들이 쌓여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텅 빈 동굴 같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빽빽한 그들의 얼굴은 일제히 창밖에 서있는 나를 향해 있었다. 목이 180도로 돌아간 이도 있었다. 안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사람으로 차 안이 꽉 메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차로 돌아가서 급속도로 차를 출발시켰다. A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공포로 가득한 나는 무아지경으로 오로지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경차와 주차장 울타리 사이를 억지로라도 뚫고 갈 생각으로 차를 몰았다. 내 차 왼쪽이 울타리에 긁히는 느낌이 났다. 끼익 끼익하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나며 자동차와 울타리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다.

 

경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안에 있는 모두가 이쪽을 보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충격이 느껴지고 곧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다. 결국 엄청난 속도로 울타리를 제치고 주차장에서 튀어나온 우리는, 도로를 달리던 차와 충돌했다고 한다. A는 머리를 부딪쳤지만 외상은 거의 없었고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나는 에어백에 세게 부딪쳐서 그런지 코가 골절되고 앞니가 3개 부러졌으며 오른쪽 다리뼈에도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상대 차량을 몰던 사람은 20대 여성이었다. 다행히도 상처는 없었지만 차가 많이 훼손되었다.

 

퇴원할 무렵 상대 차량 운전자가 문병을 와주었다. 그녀에게 경차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지만 그런 차는 없다고 했다. 먼저 퇴원한 A는 처음부터 경차 안의 사람들을 봤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한 것 같기에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 차는 고치면 못 고칠 것도 없었지만 왜인지 재수가 없을 것 같아서 폐차했다.

 

퇴원한 후로도 한동안 멍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쩐지 멍은 손바닥 모양이었다.

 

작은 손부터 큰 손.

 

많은 사람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되어 있었다.

 

A에게 남아있던 멍도 그런 모양이라고 했다.

 

그의 지갑 안에 들어있던 어머니가 주신 부적은 갈가리 찢겨있었다고 한다.

 

손바닥 모양이던 멍들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없어졌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 비비스케 (vivian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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