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 본부를 등지고 나와 나는 한참을 걸었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무나도 나약한 최중사에게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싫었고 미웠다.
예전 공수부대에 있을 때 낙하산 강하 도중 대퇴부 관절을 다쳐 2개월 넘게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있으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더 이상 강하 훈련을 할 수 없다는 군의관의 말과 그로 인해 매일같이 온몸에 젖어오는 무기력감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때의 고통보다 더 한 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에 반기를 들 수 있는 힘조차 나에겐 없다라는 사실이다. 군인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정의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젠 뭐가 정의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사단장의 말이 정의인지도 모른다.
혹시나 내가 흐르는 물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막는다고 해서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대로 뜨내기 생활 끝에 진급도 못해 보고 제대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먹여 살릴 처자식이 없어서 이런 막가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서로 상반된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순간 또 하나의 생각이 그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래... 사건 현장에 가서 더 늦기 전에 거기를 파보자.'
이때 내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일으켰다.
"여보세요."
"어이쿠...박대위님. 저 헌병대 수사관입니다."
비아냥거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이거 어떡하나? 방금 전에 사단에서 연락이 왔는데, 당분간 저하고 같이 다니셔야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단장님 명령으로 박대위님을 근접 호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뭐요?"
"지금 이 순간부터 박대위님은 헌병대에서 생활하셔야 합니다. 지금 어디 계시죠? 제가 모시러 가지요."
"젠장.. 미치겠구만."
"사단장님 명령인데 불응하면 곤란해지십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사단장은 나를 밑바닥까지 밀어 넣는 듯 보였다.
헌병대로 호송된 나는 행정실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어디를 가든 항상 수사관과 그의 부대원들이 번갈아 가며 나를 뒤따랐다. 내가 무슨 커다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들다니......
오후에는 내 숙소에서 간단한 옷가지와 생활 도구들이 헌병대로 옮겨졌다. 나에겐 아무런 일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하는 것이라고는 자고 먹고 TV 보고 책 읽는 일뿐이었다.
벌써 이틀을 여기서 보냈다. 나는 좀이 쑤셔서 미칠 것 같았다. 점심을 마치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행정실에서 한동안 팔짱을 낀 채 넋 나간 사람처럼 내가 앉아 있자 수사관이 말을 걸었다.
"힘드시죠? 껄껄껄... 대위 정도 되시는 분이 무슨 사고를 치셨길래..."
나를 위로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는 모르지만 나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상사를 달고 있는 수사관은 연신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말을 걸었다.
"며칠만 참으십시오. 자리가 나는 대로 곧 다른 부대로 배치받으실 겁니다."
그제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 대대장이나 수사과장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주로 작전실에 계시고, 행정실에는 거의 오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
"수사관 일 오래 하셨나요?"
"이제 7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보람차시겠습니다. 범죄자들 잡아들이고 있으니..."
내 말에 수사관은 손을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에이...보람차다니요. 이거 막말로 할 짓 없어서 이런 일하는 거지 기회만 되면 당장이라도 다른 병과로 옮기고 싶다니까요. 처자식만 아니었어도 군복 벗고 사회생활 좀 해보고 싶었는데.."
"왜요? 수사관이면 파워도 세고, 다들 겁내하는 직책 아닙니까?"
"허허.. 천만의 말씀입니다. 수사과장 정도는 돼야 어디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니까요. 그리고 수사과장은 아무나 합니까? 나머지는 생노가다하는 겁니다. 군대 사건 현장 가보세요. 대위님도 사단장 명으로 사건 조사하면서 가보셨지 않습니까? 어이쿠..참혹해서 말이 안 나옵니다."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내 말에 수사관은 잠시 긁적이던 볼펜질을 멈추고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사관 일을 시작하고 처음 접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전차대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죠. 부대 체육대회였는데 팀별로 전차 끌기 종목이 있었나 봅니다. 기어를 풀어놓은 전차에 줄을 연결해서 일정 거리까지 먼저 끄는 팀이 이기는 경기였는데 모두들 포상휴가 가겠다는 일념 하에 무지하게 열심히 끌었나 봅니다. 그런데 한 팀의 줄을 당기던 부대원이 그만 미끄러져 넘어진 겁니다. 그런데 움직이는 물체는 관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모두들 당기던 줄을 놓았는데도 전차가 넘어진 그 친구를 덮쳐버린 거죠."
"오...이런.."
"피해자를 확인하러 저는 후송된 의무대로 갔습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복부부터 하반신이 모두 으깨져있는 겁니다. 내장이고 근육이고, 뼈까지... 그런데 저를 더 경악하게 만든 건 그 친구가 살아서 눈을 부릅뜨고 헐떡이고 있다는 것이었죠. 저는 자리를 가리지 못하고 거기서 토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간신히 진정한 후 수술을 집도하던 군의관들을 쳐다보았죠. 젠장 그런데 이게 웬걸? 수술하는 척하더니 으깨진 내장을 살가죽으로 덮어 그냥 꿰매버리더군요. 제가 보기에도 이건 살아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더 웃긴 게 뭔지 아십니까?"
".....?"
"젠장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그 피해자가 의식을 잃고, 숨이 멎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겁니다. 뭐 하는 거냐고 물으니까 군대에서는 기본적으로 호흡이나 심박이 멈춘 환자에게 3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해야 된다고 하더군요.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나는 수사관의 말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것 같아 영 속이 편치 않았다.
"또 한 번은 뭐더라 5년 전인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이등병이 부대 내무반에서 총기를 난사한 겁니다. 그때 7명이 죽고, 5명이 반신 불수가 되었죠. 사건 현장에 갔더니 아이고..... 이건 말이 아니었습니다. 내무반 침상과 바닥에 벌건 피가 소방 호스로 뿜어낸 것처럼 뿌려져 있더라니까요. 진짜 농담이 아니라 사건 현장 조사하는데 담요를 밟으니까 젖은 빨래처럼 핏물이 쏟아져 나오더란 말입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살점들이 벽에 오물처럼 붙어있더라니까요."
내 속이 편치 않음을 알기나 하는지 수사관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죽은 애들만 불쌍한 거지요. 나라 지키겠다고 군대 와서 그게 웬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부모들 심정이 어땠는지 상상도 안 갑니다."
나는 간신히 거북한 속을 달래고 있었다. 죽은 김병장 말대로 나는 비위가 많이 약한 듯했다.
"이 생활하다 보면 회의감도 많이 느끼지요. 전에는 군납 비리 사건에 연루된 중대장 한 명이 자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건을 파헤치는데 이건 도저히 수사할 엄두가 나질 않더군요."
"뭔데 말입니까?"
"그 비리에 군단장까지 연루가 되어 있더란 말입니다. 군검찰은 물론 수사관들까지 혀를 내두룰 만한 초대형 비리 커넥션이 포착되었던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육군본부에서 사건을 종료하라는 명령이 하달된 겁니다. 항간에는 그 중대장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죠. 죽기 전 그 중대장은 의외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자신이 군납 비리에 관한 거의 모든 서류를 관리하고 있음을 폭로했죠. 그런데 군검찰로 소환되기 전날 자살한 겁니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구요. 유서가 조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도 수상한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토록 협조적이던 사람이 처자식을 놔두고 갑작스레 자살한단 말입니까? 결국 그 사건은 그 중대장이 비리 사건 수사에 대한 압박을 못 이기고 자살한 것으로 수사가 종결되었죠. 지금도 생각하면 참 아쉽습니다. 그 중대장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수사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도 들고요."
"씁쓸한 얘기군요."
"X파일처럼 군대에도 여러 가지 의문스런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대부분의 사건들이 인위적으로 덮어진 것입니다. 정말로 덮어서는 안 될 것들이 덮어졌을 때는 뭔지 모를 분노와 배신감이 치밀었었죠. 간부 사건도 그 정도인데 사병들 사건은 오죽하겠습니까? 평균을 내보면 1년에 군인들이 약 500명 넘게 죽습니다. 1개 대대 병력이 1년 하나씩 사라지는 꼴이죠. 권력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나 봅니다. 500명 중의 몇 명 정도는 그냥 넘어가자고. 군대 의문사라는 게 다 그런 거죠. 그만큼 군대가 폐쇄적인 곳이라는 상징이기도 하지요."
수사관은 잠시 볼펜을 쥔 손을 턱에 받치며, 감상에 잠기는 듯했다.
"처음엔 미연방수사관 FBI처럼 정말 멋진 수사관 생활을 상상하며 의욕적으로 덤볐었죠. 멋진 롱코트를 입은 사복경찰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빳빳하게 풀 먹은 군복으로 입고 사건 현장에 '쨔잔~~'하고 나타났을 때는 나름대로 뽀대도 나고 멋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저는 수없이 많은 무소불위의 권력자들의 노리개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죠. 수사관이 아닌 그 들의 입맛에 맞는 시나리오를 쓸 줄 아는 작가였다고나 할까요? 입을 다무는 대가로 저는 승진을 했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다시 돌아갔습니다."
나는 수사관의 얘기를 들을수록 의외로 그가 생각이 넓고 속이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들은 얘기들은 못 들은 걸로 하십시요. 그냥 제 무용담이려니 생각하시고, 그냥 넘겨 버리세요. 괜히 수사과장이나 대대장님 아시면 잔소리 듣습니다."
진지하게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꼭 묻고 싶었던 것을 그에게 던졌다.
"최중사 사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에 수사관은 멈추었던 볼펜질을 다시 시작하며, 나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 얘기 하지 마십시요. 사단본부에서 함구령이 내려졌습니다."
종이서류에 볼펜을 긁적이며 시선을 맞추지 않는 수사관에게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수사관님도 그날 들었지 않습니까? 최중사가 애기 울음소리 들었다고, 그리고 자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수사관은 대답을 거부한 채 무슨 서류를 작성하는지 연신 볼펜질을 해댔다. 나도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최중사는 죽을 목숨입니다. 이젠 제가 그를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럴 힘도 없구요. 단지 알고 싶은 건 최중사 사건 뒤에 숨어있는 내막이 궁금할 뿐입니다. 수사관님도 알고 싶은 것 아닙니까? 입 다물고 있는 게 정의입니까? 저를 좀 도와주십시요. 제가 전출을 가면 모든 게 끝입니다. 사건을 파헤칠 시간도 3~4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수사관은 시선을 피한 채 대답을 거부했다. 나는 잠시 말을 멈 춘 후 굳은 결심을 하고 그에게 말을 건넸다.
"김석우 병장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아십니까? 제가 따로 사단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은 제가 수사관님께 진술한 내용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제서야 수사관의 볼펜질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아무 말 없이 응시했다. 나는 이 때다 싶어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친구는 졸음운전이나 운전미숙으로 죽은 게 아닙니다. 저를 도와주신다면 진실을 말해 드리죠."
그러나 나를 잠시 동안 응시하던 수사관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볼펜질을 시작하였다.
"대위님이 죽인 게 아니라면 그냥 덮어두십시요. 그러는 게 대위님 신상에 좋습니다. 이젠 다 끝났습니다. "
나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솔직히 수사관님도 일련의 사건 내막을 알고 싶죠? 알고 싶은데 위에서 내리는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거죠?"
나는 볼펜질을 하는 그의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숨소리가 불규칙해지고 거칠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행정병 몇 명이 행정실로 들어왔다. 무슨 업무를 보려고 하는데 수사관이 그들을 잠시 내보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눈만 치켜뜨며 나를 응시했다. 무섭게 노려보는 그의 눈빛은 무슨 일을 낼 것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지만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나의 얼굴을 한참 동안 관찰하던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오늘 밤 대대장과 수사과장이 군단 기무대장의 회식 자리에 참석기 위해 멀리 떠날 것이오. 당신 대타로 한 놈을 숙소에 박아놓을 테니 오늘 저녁 8시에 차량고 앞에 서 있는 소나타 차량을 타시오."
저녁 6시쯤 헌병대장과 수사과장이 부대를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빨리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얼마 동안 자유시간을 즐기는 척하며 시간을 보낸 후, 서둘러 복장을 챙기고 부대 차량고로 향했다. 저녁 8시에 구름까지 몰려오고 있음에도 주변은 그다지 어두워지지 않았다. 수사관의 말대로 어두운 차량고 앞에 소나타 승용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운전석에 타고 있는 사람은 역시나 수사관이었다.
"뒷좌석에 타십시오. 앞 좌석은 위험합니다."
내가 좌석에 앉자마자 차는 급히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 질문에 수사관은 재빨리 대답했다.
"일단 부대를 빠져나간 후 얘기합시다."
위병소에 진입을 하자 나는 살짝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위병에서는 퇴소 차량은 잡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위병소를 통과한 수사관은 부대를 나와 어딘지 모르는 방향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사건 현장으로 가는 겁니까?"
"묻지 말고 일단 이걸 읽어보시오"
말이 끝나자 수사관은 조수석에 놓인 얇은 서류봉투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앞의 사건 기록 일지만 보시오."
"뭡니까? 이게"
"이번 사건 조사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오."
나는 실내 조명등을 켰다. 그리고 운전에 열중하는 수사관의 도움말을 참고로 사건 일지를 읽어 내려갔다.
- 1978년 7월 14일 -
육군 [중사 김()()]가 같은 부대원 [중사 고()()], [하사 이()()]와 자신의 아내를 소총으로 살해하고 본인은 자살.
- 1981년 7월 23일 -
육군 [중위 정()()]가 술자리를 같이 하던 동료 부대원 [중사 이()()], [중사 김()()]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하사 최()()]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힘. 부대로 다시 돌아가 부대원에게 총격을 가하던 도중 사살됨.
- 1986년 7월 18일 -
육군 [중사 강()()]가 만취 상태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소총으로 살해하고, 군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6개월 후 사형집행됨.
- 1991년 7월 29일 -
육군 [하사 박()()]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흉기로 수십 차례 가슴과 안면 부위를 찔러 살해한 후, 군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4개월 후 사형집행됨.
마지막까지 읽어내려간 나는 수사관에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내 질문에 답을 거부하고 수사관은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그 사건들의 공통점이 보입니까?"
"모두 7월에 발생하였고,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이네요."
"맞습니다. 최중사 사건도 절묘하지 않습니까? 7월 17일...."
"그러고 보니 김병장이 죽은 날도 7월 19일인데...."
수사관은 무슨 엄청난 정보라도 알아낸 양 감탄사를 연발했다.
"캬~~~ 7월의 저주라... 이거 멋진걸."
수사관은 잠시 장난스런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또 다른 엄청난 공통점이 뭔지 아슈?"
"뭡니까?"
수사관은 잠시 미소를 짓더니 답을 했다.
"사건 현장이 모두 같은 곳이라는 겁니다."
"예?????"
"바로 그 모든 사람들이 최중사 집에서 죽어나갔다는 겁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 대로 최중사 사건 말고 그 집에서만 20년 동안 모두 7명이 죽었고, 그 집과 관련된 사람을 포함하면 총 10명이 죽었소."
나는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건 완전히 저주받은 집이네요. 그런데 왜 20여 년 동안 폐쇄되지 않고 집이 남아있는 거죠? "
"7월을 넘기지 않은 군인들과 거기에 살던 민간인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소. 단지 거기서 7월을 보낸 군인들과 그 가족들만이 처참하게 죽어나간 것이오."
그냥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석연치 않았다. 그동안 나 자신이 보고 느껴왔던 일련의 사건들이 오버랩되면서 싸늘한 기운이 내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도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저주를 내리고 있는 걸까요?"
나의 넋두리에 수사관이 대답했다.
"귀신이든 아니든 분명히 뭔가 있습니다. 예전에 수사관 교육받을 때 들은 얘기인데, 강한 자기장이나 방사선에 노출되면 사람이 환청이나 환각을 겪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방사선 같은 경우는 암 같은 질병까지 일으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저주로 치부하기도 한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집에서 일어난 일들의 원인을 밝히는 겁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차에 올라탄 직후 궁금했던 사항을 다시 물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거기에 보면 사건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지 않습니까? 하사 최()()..."
"아니...그 사람 찾았습니까?"
"명색이 군 수사관인데 그쯤이야 껌이죠. 미리 연락도 취해놨소."
"대단하십니다."
"솔직히 직업이 경찰인 사회 친구들 도움을 좀 받았죠. 그건 그렇고 죽은 김병장 얘기나 해보슈. 사단장한테 뭐라고 보고가 된 겁니까?"
나는 잠시 서류에서 눈을 떼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간 벌어졌었던 일련의 미스테리한 일들을 수사관에게 낱낱이 얘기하였다. 얘기를 듣고 있던 군 수사관은 자신도 소름이 끼치는지 몇 번의 탄식을 내뱉었다. 특히 김병장이 광신도들의 방언 같은 괴상한 말을 쏟아냈다는 부분에서는 진짜로 그랬냐고 몇 번을 되묻기도 했다.
우리는 군이수지역을 한 참 벗어난 곳까지 차를 몰았다. 보통의 군인들은 이수지역을 벗어나기 힘들지만 수사관들은 다른 것 같았다. 검문소 헌병들은 수사관의 얼굴만 보고도 그냥 통과시켰다.
1시간 정도 차를 몰아 우리는 외진 시골집에 도착하였다. 대문 앞에서 인기척을 보이자 한쪽 발을 사용하지 못하는 40대의 한 남자가 목발을 짚고 나오는 것이다. 키는 170이 조금 넘고, 마른 체형이었으며, 하얀 얼굴에 며칠 동안 깎지 않은 듯한 검은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절룩거리는 다리뿐만 아니라, 함몰되어 있는 양쪽 볼이 그가 지금 상당히 병약해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우리가 찾는 그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신분을 밝히고 여기에 온 목적을 얘기했다. 그는 우리를 천천히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안내했다.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그는 국가보조금을 받고 허름한 집에서 연명하는 것 같았다.
"그날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소."
그는 조용히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길게 담배연기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그날은 무서울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소. 부대 합동훈련이 끝나고 얼마 후 나는 소대장 집에서 선임하사 둘과 간단히 술자리를 같이 했다오. 원래 하사관들과 장교들은 친하지 않은데 소대장이 워낙 넋살이 좋고, 술을 좋아해서 우리 하사관들이 그를 잘 따랐소. 그런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소대장이 이상한 얘기를 하더이다. 요사이 밤마다 어디서 애기 우는소리가 들린다고...."
얘기를 듣고 있던 수사관과 나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 애기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고 그럽디다. 어떤 날은 가위에 눌렸는데 어두운 방안에 어떤 군인이 총을 들고 나타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랍니다. 얼굴과 몸에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군인이었는데 뭔가를 계속 찾고 있더랍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배 위에 올라앉아 징그러운 웃음을 한 번 짓더니 긴 소총을 턱밑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더랍니다."
그는 잠시 담배를 몇 번 빨더니 말을 이었다.
"소대장의 귀신 얘기에 우리 하사관들은 그냥 웃어넘기려고 했는데, 소대장 표정이 너무 진지한 거요. 우리가 소대장에게 무슨 군인이 겁이 그렇게 많냐며 놀리니까 갑자기 소대장의 표정이 경직되더니...이상한 소리를 하더이다. '들어봐...지금도 들리잖아..'이러면서 말이오. 휘둥그레 부릅 뜬 두 눈으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소리의 정체를 찾는 소대장의 표정이 정말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오. 우리도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들리지 않았다오. 정말 우리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소대장은 미친 사람처럼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우리를 협박했다오. '얼럴러..얼러러..들어...들어..들리잖아....'이러면서 말이오. 그거 있잖소, 교회 같은 데서 괴상한 소리 내면서 기도하는 거...."
"방언 말입니까?"
"맞아..그거..."
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죽은 김병장의 그 괴기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소대장이 계속 그런 소리를 내면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이 뒤집히더이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가....나는 잠시 한쪽 팔뚝을 쓸어내렸다.
"우리는 그 사람을 진정시킬 생각은 못 하고 너무 놀라서 순간 뒤로 물러났는데....."
얘기를 잠시 멈추는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짓이기고는 다시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갑...갑자기 소대장이 정신을 차리고 그 괴상한 행동을 멈추더이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몇 번 목을 꺾더니......"
그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지 왼손으로 자신의 입을 감싸 쥐었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나는 그가 심하게 격해져 있음을 알고 그를 안심시켰다.
"갑자기 벌떡 일어서 품에서 권총을 꺼내더니.. 왼쪽의 선임하사부터 차례로 권총을 난사하는 거요...흑흑흑.."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쏟아냈다. 우리는 잠시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그는 옆에 있던 무슨 종류인지 모르는 약을 손에 움켜쥐더니 입에 털어 넣고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몇 번의 깊은숨을 몰아쉬고는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맨 왼쪽에 있던 선임하사는 세 발을 머리에 맞아죽고, 가운데 앉아있던 선임하사는 거의 다섯 발을 얼굴과 가슴에 맞았소. 갑작스런 총소리에 귀가 멍해져서 있는데 내 얼굴과 몸에 핏물이 마구 튀는 거요. 나는 너무 무서워서 죽어라 비명을 질렀소. 이게 꿈이라면 깨길 바랐고, 꿈이 아니라면 누가 좀 소대장을 말려주길 바랐소."
심하게 떨리는 그의 손에서 미처 털어내지 못한 담뱃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흑... 두 명을 순식간에 해치운 소대장은 곧바로 나를 죽이지 않고 나에게 미소를 보이더니..총을 겨누고 씨익 웃는 게 아니오? 그때 마지막 순서로 죽음을 기다리는 나의 심정이 어떠했겠소? 내가 그때 본 것은 소대장이 아니라 악마였소...악마... 그 순간 나는 소대장을 제압하기 위해 괴성을 지르며 온 힘을 다해 그를 향해 튀어올랐소. 그러고는 두어 발의 총소리가 들렸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몸이 불편하신 겁니까?"
"한 발은 폐 쪽, 한 발은 어깨 쪽에 맞았고, 마지막 한 발은 대퇴부 쪽에 맞았는데, 대퇴부 쪽으로 들어간 총탄이 신경을 건드린 거요. 하늘이 도왔는지 나에게 세 발을 쏘고 나서 소대장의 권총이 실탄을 모두 뱉은 거요. 난 실신했고, 소대장은 다시 부대로 돌아가 소동을 벌이다 죽은 겁니다. 결국 난 의가사 전역했소. 그나마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십수 년간 나는 그 뒤로 매일 밤 악몽이 시달렸소. 매일 밤마다 피떡이 묻은 얼굴로 소대장이 나타나 그 악마 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거요. 지금은 약도 먹고 치료도 받고 해서 많이 나아졌지만, 얘기를 하는 지금 이 순간도 그때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오."
모든 얘기가 끝나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아픈 몸을 이끌고 목발의 그 남자가 대문 밖까지 배웅을 하였다.
낮에는 맑아 보였던 하늘이었는데 어느새 비구름이 몰려왔는지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안부를 전하고 뒤돌아 가려는 순간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내뱉었다.
"그곳은 저주받은 곳이오."
"예?"
수사관과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유난히 더 핼쑥해 보이는 그의 얼굴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난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 돌아온 대가를 난 지금 처절하게 치르고 있는 것이오. 부디 몸조심하시오."
한동안 말이 없이 우리는 조용히 달리는 차 안에서 전방을 주시했다. 조금씩 빗방울이 굵어지자, 수사관은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나는 서서히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두려웠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자꾸 죽음이라는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것 같아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뒷좌석이 아닌 조수석에 내가 앉아 있는데도 수사관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그에게 물었다.
"왜 저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나의 질문에 운전을 하던 수사관이 씨익 웃었다.
이젠 누가 미소 짓는 것만 봐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일에 이번 일이 들통나기라도 하면 고생 좀 하실 텐데요. 저야 홀몸이라 부담이 없지만 수사관님은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난 대위님이 부럽소이다. 나는 내 안위만을 생각한 채, 수사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저버린 사람이오. 속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런데 대위님은 나와 달리 부대원 하나 때문에 사단장의 명령까지 어겨가며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잖소. 당신을 만난 뒤로 예전에 내 가슴속에서 사라졌던 정의감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거요. 지난 사건은 어쩔 수가 없지만 지금의 사건이라도 제대로 해결하고 싶었소. 그런데 대위님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 거요?"
"그냥....그냥.......군인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헐...명답이로세."
수사관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10시에 가까워지자, 나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을 감지하고 수사관을 재촉했다.
"이제 뭘 하죠?"
"죽은 김병장이 말한 곳으로 가봐야죠."
"사건 현장 말입니까?"
"대위님이 거기를 파보려다가 실패한 것 아닙니까?"
"장비도 없는데..."
"오늘 거기 툇마루를 뜯어봅시다. 빠루 같은 간단한 장비를 트렁크에 다 실어 왔소."
사건 현장... 서서히 굵어지는 빗줄기...그리고 어둠에 묻힌 밤......왠지 불길하다.
"수사관님......"
"네?"
"현장에 가기 전에 나하고 약속 하나 합시다."
"무슨 약속이죠?"
"지금의 모든 주변 환경이 저와 김병장이 사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상황과 같습니다."
"음.....대위님은 지금 우리 중에 누가 귀신 들릴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신가요?"
"걱정이 돼서 하는 말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한 명이 미쳐 날뛰기라도 한다면 지금 뒤에 있는 공구들이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수사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떻게 하잔 말입니까?"
"처음에 김병장이 이상한 행동을 했을 때 제가 김병장을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김병장이 정신을 차리는 겁니다."
"아...그럼 둘 중에 하나 누군가가 귀신 들렸다 판단이 되면 사정없이 후려쳐라 이겁니까?"
"현재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별거 아니구만. 일단 알겠소....."
나는 고개를 돌려 사정없이 빗줄기가 분쇄되고 있는 앞 유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사건 현장에 도달하자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내리는 빗줄기로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우의를 입고 차에서 내리자 질퍽한 흙탕물이 군화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는 차량 트렁크에서 장비를 챙겨 들었다. 나는 배척 (일명 빠루라고 부르는 못을 뽑을 때 사용하는 긴 쇠막대)을 들고, 수사관은 야전삽과 해머를 들고 대문 앞에 나란히 섰다. 가끔씩 하늘을 울리는 천둥소리와 빗소리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들리지 않았다. 번갯불에 잠깐씩 얼굴을 드러내는 사건 현장의 대문은 우리를 반기는 듯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또한 비바람에 찢겨 펄럭이는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어서 오라고 반가운 손짓을 보내는 것 같았다.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나의 말에 수사관이 맞대응했다.
"대위님이나 그 빠루로 날 찍어 죽이지나 마쇼."
지옥의 입구처럼 보이는 낮은 대문을 통과해 우리는 작은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어 우리 외에 다른 누가 있는지 구석구석 살폈다.
눈앞에 툇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수사관에게 말을 건넸다.
"바로 저기입니다. 김병장이 말했던 곳이."
"음...그럼 먼저 마루 밑의 디딤돌부터 치워버립시다."
우리는 배척을 지레 삼아 마루 아래에 놓여있는 두 개의 디딤돌을 힘껏 들어내기 시작했다. 디딤돌 주변을 시멘트로 발라 놓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머질과 삽질을 번갈아가며 우리는 조금씩 디딤돌을 움직여 나갔다. 기와집 처마 아래로 빗물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번개 치는 횟수가 늘어난 듯 보였다. 번갯불이 번쩍일 때마다 마당을 중심으로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우....무섭게 자꾸 번개가 치고 지랄이야..."
수사관이 하늘을 몇 번 쳐다보더니 불평을 토로했다.
바로 그때....
"응애.....응애......응애....."
내 귓속의 고막을 울리는 작은 아기 울음소리.... 빗소리에 섞여 있지만 분명히 들린다. 나는 즉시 행동을 멈추고 쭈그린 자세를 유지한 채,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대위님, 왜 그래요?"
수사관이 걱정스러운 듯,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액체로 흠뻑 젖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그리고 낮은 숨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안 들립니까?"
"뭐요? 애기 소리?"
"네, 애기 소리....."
내 말에 수사관이 주변을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기 시작했다.
"어라....난 안 들리는데....진짜로 들려요?"
손전등을 통해 주변을 관찰하던 수사관이 나의 얼굴을 비추며, 말을 이었다.
"비 오면 고양이 소리가 애기 소리처럼 들리기도 해요."
수사관은 나를 안심시키려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의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번개가 연속으로 플래시를 터트렸다. 나는 수사관을 바라본 채 정수리부터 꼬리뼈까지 쫘악 얼어버렸다.
마당 한가운데 누가 서있는 것이다.
얼굴은 수사관을 향하고 있는데 왼쪽 곁눈으로 그가 보이는 것이다. 나의 왼쪽 뺨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뒤늦게 번개를 따라온 천둥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나도 모르게 오른손에 쥐고 있던 배척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 묻힌 마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번개가 빛을 발했다.
텅 빈 마당....그리고 쏟아지는 빗줄기...아무도 없었다.
배척을 쥐어든 나의 오른손이 덜덜 떨렸다.
"괜찮아?"
수사관이 나의 어깨에 손을 탁 얹으며 물었다.
"응애.....응애....응애....."
아기 울음소리.....빗소리는 들리지 않고, 아기 울음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그런데 뭐지?
수사관이 왜 갑자기 나에게 반말이지?
그리고 목소리가 왜 낯설지?
나는 다시 고개를 천천히 원위치시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심장이 터져나가는 듯했다.
얼굴에 온통 피로 덮여있는 낯선 남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짓고 있는 것이다.
번갯불이 번쩍일 때마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아~~~~악!!! 씨발 뭐야!! 아~~~~~~~악!!"
나는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뒤로 물러서며 넘어진 나에게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배척을 오른손에서 천천히 들어 올렸다. 순간 어떤 강한 힘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차디찬 얼음 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확 돌아왔다.
"여길 왜 왔어? 군바리 새끼"
그러나 그 괴상한 음성은 멈추지 않았다.
"너..누..누구야..."
다시 한번 내 얼굴에 큰 타격이 주어졌다.
"대위님!! 정신 차려요!!!"
수사관이었다.
뒤로 넘어진 자세로 헐떡이는 나에게서 수사관은 배척을 뺏어들었다.
"미쳤어요? 정신 차려요!! "
두 눈을 부릅뜨고 뒤로 넘어진 자세로 헉헉대는 나를 향해 세 번째 손이 나에게 날아왔다.
나는 날아오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만.....그만..."
수사관은 계속해서 나의 얼굴을 살폈다.
"이젠 괜찮습니다....허..헛것이 보였어요."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제야 주변의 빗소리가 귀에 다시 들어왔다.
수사관이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진짜로 미쳐서 이 빠루로 날 찍어 죽일 셈이오?"
"미안합니다....잠시 헛것이 보여서..."
"아까 약속하고 오기를 잘 했네..."
이제야 난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정상인 줄 알았는데, 내가 미친 것이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그렇다면 김병장과 다리를 건널 때 누가 미쳤던 것인가? 혹시 김병장이 아니라 내가 미쳤다면? 김병장이 똑바로 잡고 있던 운전대를 내가 틀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럼 멀쩡히 운전하고 있던 김병장을 내가 죽였단 말인가? 그날 애기 울음소리는 내가 듣지 않았던가?
"크아~~악!!! 씨발 말도 안 돼!!!!!!!!!"
머리를 움켜쥐며 울부짖는 나에게 수사관이 호통을 쳤다.
"왜 그래요? 박대위!!! 이번엔 군홧발로 맞고 싶소!!!!!"
그래... 김병장과 나, 우리는 둘 다 죽을 운명이었어. 그런데 나는 살아 돌아온 거야. 혈기 왕성한 한 젊은이를 죽이고... 이젠 평생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해. 소대장의 권총 세례에서 살아나온 하사의 말이 떠올랐다.
'난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 돌아온 대가를 난 지금 처절하게 치르고 있는 것이오.'
"헉헉...말도 안 돼...씨발!!! "
아무런 대답 없이 주저앉아 울먹이며 절규하는 나에게 갑자기 군홧발이 날아들었다.
"정신 차려!! 박대위!! 당신 미쳤어?"
수사관의 군홧발에 나는 마당의 흙탕물 속으로 나뒹굴어졌다. 큰 대자로 누워버린 내 몸 위로 차가운 빗줄기가 끝없이 쏟아졌다. 헐떡거리는 내 입속에 빗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가늘게 눈을 뜨려 하자 나의 작은 속눈썹은 쏟아지는 빗물을 연신 걷어내기에 바빴다. 한참을 시체처럼 누워있는 내 앞에 수사관이 삽을 들고 걸어와 멈춰 섰다. 한심한 듯 나를 지켜보던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박대위...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정신 차리시오."
지금 이 순간 그는 나를 때려죽이러 온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빗물을 토해내기 위해 몇 번의 기침을 하고는 대답했다.
"김병장이 죽은 날.... 김병장이 미친 게 아니라..... 제가 미쳤었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김병장을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하는 거요?"
"만일 그랬다면요?"
내 말에 수사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 않았소? 만일 당신이 그랬다 하더라도 그건 당신의 의지가 아니었잖소? 김병장이 죽지 않았다면 어쩌면 당신이 죽었을 수도 있는 것이오."
"흑...말도 안 돼..."
나는 다시 한번 머?
출처 : 에펨코리아 - 리뷰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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